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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다대진 동헌
동헌은 조선시대 지방관서에서 첨사가 정무를 보던 건물로 아사(衙舍)·군아(郡衙)·현아(縣衙)·시사청(視事廳)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고 다대진성 내에 있던 관아건물 중에서 유일한 건축유구(建築遺構)로 지금은 몰운대 내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몰운대1길 73(다대동 산144)에 옮겨져 있다.
원래는 관아 일곽의 하단 구역에 위치했던 동헌 건물로 수호각(睡虎閣)이라 불렀다.
다대진이 혁파된 후 공가(公家)로 방치되던 것을 다대포실용학교의 교사(校舍)로 사용되다가 다시 다대초등학교 교사로 전용되었고 1970년 다대초등학교 운동장 정지공사 때 지금 위치로 이전 복원되었는데 이때 학교 관계자들이 건물을 객사로 잘못 기록하였고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3호(1972. 6. 26)로 지정될 당시 다대포 객사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가 2020년 7월 부산시 문화재 위원회 심의에서 다대진 동헌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2020.07.29)
다대진 동헌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좌측 첫째 칸과 우측 첫째 칸은 온돌방으로, 가운데 세 칸은 우물마루를 칸 대청으로 꾸몄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대진동헌의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다대진이 설진된 임진왜란 이후로 추정할 수 있다. 다만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것을 수차례 중건 중수하였다가 1825년(순조 25년)에 마지막으로 중수한 기록이 남아 있고, 현재의 모습은 객사가 아닌 동헌 건물인것으로 보고 있다.
1902년 구한말에 설립하여 1904년 개교한 다대포사립실용학교 시절부터 전 다대포객사는 철거되었으며, 다대진 동헌은 교실로 사용되어 오다가 1943년 다대포공립학교로 개편된 뒤에도 교실로 사용되면서 건물의 구조에 변화가 오는 등 낡아졌지만 부산에서 하나뿐이며 가장 오래된 동헌건물이다.
본래 있었던 위치는 오늘날의 부산유아교육진흥원 남북쪽 본관건물이 있는 계단 위였지만 1970년 지금의 자리 몰운대로 옮겨왔다.
기록은 한결같이 부산에서 하나뿐이고 가장 오래된 동헌건물로서 다대진동헌을 일컬으며 다대진동헌 창건시기를 다대진이 설치된 임진왜란 이후로 보고 있으면서도 임진란 당시 소실되었다는 모순된 기록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은 학술적 검토가 필요한 대목이다.
몰운대로 옮겨온 이 다대진동헌는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벽이 없이 기둥으로만 이루어진 이 동헌은 일반적으로 중앙의 정당과 좌우익실로 이루어진 다른 객사들과는 달리 정당만이 남아있다. 1980년 기둥과 마루를 보수하고 단청공사와 현판을 설치하였다.
현재 이곳은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13호로 등재되어 있어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2020년 이후 변동]
동헌은 조선시대 지방관서에서 첨사가 정무를 보던 건물로 아사(衙舍)·군아(郡衙)·현아(縣衙)·시사청(視事廳)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고 다대진성 내에 있던 관아건물 중에서 유일한 건축유구(建築遺構)로 지금은 몰운대 내의 부산광역시 사하구 몰운대1길 73(다대동 산144)에 옮겨져 있다.
원래는 관아 일곽의 하단 구역에 위치했던 동헌 건물로 수호각(睡虎閣)이라 불렀다.
다대진이 혁파된 후 공가(公家)로 방치되던 것을 다대포실용학교의 교사(校舍)로 사용되다가 다시 다대초등학교 교사로 전용되었고 1970년 다대초등학교 운동장 정지공사 때 지금 위치로 이전 복원되었는데 이때 학교 관계자들이 건물을 객사로 잘못 기록하였고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3호(1972. 6. 26)로 지정 될 당시 다대포 객사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가 2020년 7월 부산시 문화재 위원회 심의에서 다대진 동헌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다대진 동헌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좌측 첫째 칸과 우측 첫째 칸은 온돌방으로, 가운데 세 칸은 우물마루를 칸 대청으로 꾸몄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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