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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팔경중의 하나로 학이 날아가는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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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번주소 : (49527)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산144
도로명주소 : 부산 사하구 몰운대1길 73
도로명주소
컨텐츠명 몰운대(沒雲臺)
종류분류 자연유산/자연경관/지형지질경관
지정종목 부산시 지방문화재 제27호
지정일자 1972년06월26일
시대구분 근/현대
상세문의 051-220-4000
관리자명 김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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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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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몰운대

 


 

• 이용요금 : 무료

• 시설규모 : 면적 : 492,300㎡

 

몰운대의 총면적은 506천㎡로 1972년 6월 26일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었다. 부산의 3대(臺)라 하면 태종대, 해운대, 몰운대이다. 이 3대는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에 둘러싸인 가운데「海天萬里」의 바다 경관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전국 사진매니아들의 출사지역(사진출사)으로 알려져 있다.

 

낙동강 하구의 최남단으로 다대포 서남쪽 해발 78m의 몰운대는 아주 오래 전에는 몰운도(沒雲島)란 섬이었다. 그것은 1763년 일본통신사 조엄(趙樟)이 해사일기(海擄日記)에 해운대와 몰운대의 경치를 비교한뒤「몰운대는 신라 이전에는 조그마한 섬으로 고요하고 조용한 가운데 아름다워 아리따운 여자가 꽃속에서 치장을 한 것 같다」고 한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1544년 2월의 中宗實錄에서도「몰운대」에 왜선의 후망처(지금의 감시소)로 봉수대를 설치할 것을 의논하고 있다. 그래서 西區誌는 중종실록의「몰운도」(지금의 몰운대)란 기록은 예부터 불러오던 지명이기 때문에 그리 쓴것이지 중종때는 이미 육지와 이어져 있었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부산시가 편찬한「부산의 문화재」에서는 몰운대를 16세기까지는 섬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중종실록을 따른 것 같다. 신라 이전과 16세기 이전은 적게 잡아도 6백년의 거리가 있다. 한데 신라 이전을 말한 조엄의 해사일기도 함부로 그리 말했다고 보아지지 않는다. 그것은 조엄이 1757년 동래부사이다가 1758년에는 경상도관찰사가 되고 1763년에는 통신사로 일본으로 갔다가 대마도에 들러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싹튀워 줄기를 뻗쳐서는 그 줄기를 심어 가꾸는 고구마 재배법과 저장법을 소상히 알아 가지고 귀국할 때 씨고구마를 가져와서 그의 연고지인 동래와 제주도에 그 재배법과 저장법을 퍼뜨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때(1764)의 동래부사는 姜必履였는데 자기보다 7년전의 부사 조엄에게서 고구마 재배법을 익힌 姜必履는 甘藷譜란 책까지 내어 고구마재배를 지방민에게 지도 장려했다. 그러니 동래가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의 고구마재배지가 된다. 그러한 연고를 가진 조엄이 쓴「해사일기」고 보면 몰운대는 중조이전까지 섬이었을지도 모른다.

 

몰운대의 이름은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이면 그 안개와 구름에 잠겨서 섬이 보이지 않는다고 구름속에 빠진 섬이란 시화적(詩畵的)인 이름이 되었다.

이곳에는 신석기시대에 이미 사람이 살았다고 여겨지는 패총을 남기고 있다. 임진왜란때 釜山浦 海戰에서 中軍將의 직책을 맡았다가 부산포에서 전사한 정운공의 사적을 적은 鄭運公殉義碑가 이 몰운대에 있다. 多大浦僉使營의 객사도 다대포(지금의 다대포초등학교 자리)에서 옮겨져 복원이 돼 있다.

 

낙동강 하구가 바다와 어우러지고 태백산맥의 마지막 끝자리가 되는 이 몰운대는 경관이 아주 뛰어나 시인 묵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곳으로 멀리서 바라보는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노래한 동래부사 李春元의 시(詩)가 동래부지(東萊府誌)에 전하는데 이 시를 돌에 음각한 "몰운대 詩碑"를 1999.6.12 사하지역발전협의회에서 건립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몰운대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으며, 현대적 의미로 해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몰운도를 몰운대라 하지만 몰운도에는 몰운대와 화손대(花孫臺)의 두 대(臺)가 있다. 화손대는 몰운도의 남쪽끝 바다로 면한 동쪽 끝의 대를 말하고, 몰운대는 남쪽끝 바다를 면한 한가운데의 대를 말한다. 또한, 부산에서 섬이 많은 곳도 이 몰운대가 있는 다대포 주위다. 아득한 바다 저멀리로 떨어져 부산의 연안을 지키는 남형제도와 북형제도, 그리고 목도, 금문도, 동섬, 동호섬, 팔봉섬, 솔섬, 오리섬, 쥐섬, 모자섬, 자섬 등 모두 몰운대(다대동 산144번지)와 함께 다대동에 지번 지적이 올려져 있는 섬이다.

 

 

몰운대 스토리텔링


조선 선조 25년(서기1592년) 음력 9월 1일 새벽 이순신장군의 연합함대는 다대포와 부산포를 점령한 왜군함대를 몰아내고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고자 가덕도를 출발하여 다대포 앞바다 화준구미[화손대와경도(모자섬)] 사이의 해협에 이르게 된다.     

전투에 들어가기 전 이순신장군은 지칠 대로 지친 부하장수를 도저히 출전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정운장군의 출전을 만류하였으나 정운장군은 ‘장수가 나라를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찌 전쟁을 회피 하겠습니까, 제 한몸 부셔져 물고기 밥이 되더라도 이 전쟁의 끝을 꼭 보고 죽을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출전을 강행하였다.

 

몰운대 앞바다를 지날 때 정운장군이 문득 휘하 부관에게 물었다. ‘여기는 지명이 어찌되오?’ 라고 물으니 예! ‘몰운대’ 라 하옵니다.‘ 몰운대라, 내 이름의 정운(運)의 運과 몰운대의 운(雲)이 같은 음인것을 보면 내가 여기서 죽을 것이다.(我雲臺)라는 말과 함께 장렬하게 전사하셨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함대가 머물렀던 선창은 지금의 성창기업 저목장 방파제가 되었고, 제6회(1970년)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조오련 선수는 이 방파제에서 출발하였다. 대한해협을 건너기 위해서 한반도와 대마도가 제일 가까운 지점인 다대포 선창에서 ‘화준구미’를 보고 물에 뛰어들어 13시간 16분 만에 대마도에 상륙하여 대한남아의 기상을 드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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