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신 - 위키백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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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신 (尹興信, 1540년 ~ 1592년)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파평이다.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의 조카이고, 대윤 윤임의 아들이다. 진천현감 등을 거쳐 다대포 첨사로 재직 중,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초기에 부산 다대포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생애 임진왜란 전 을사사화에서 화를 입은, 윤임의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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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신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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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興信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파평(坡平). 임진왜란 발발 당시 다대포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 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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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영웅' 윤흥신 장군 동상 재건립 < 사회 < 기사본문 - LG헬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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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하면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는 분들 많이 계실 겁니다.그런데 윤흥신 장군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고 있죠.전쟁 초기 왜군을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두고 전사한 윤흥신 장군의 동상이 부산에 우뚝 섰습니다.보도에 김한식 기자입니다.[리포트]큰 칼 옆에 차고 커다란 활을 든 장군상.오른손을 굳게 쥐고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에서 굳건한 결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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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포진성 전투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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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윤흥신이었다. 참고로 윤흥신은 중종 ~ 명종 때의 권신인 윤임의 아들로, 을사사화 때 아버지가... 징비록이나 윤흥신 비문에 의하면 4월 13일 부터 서평진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치루어 처음에 격퇴하여 일본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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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첫 번째 승리〕 윤흥신 장군의 다대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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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신 장군 부산진성의 정발장군, 동래성의 송상현 장군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부산을 지킨 3대 명장으로 꼽힌다. 윤흥신 장군은 조선... 6세의 윤흥신은 노비가 되었다. 이후 선조가 집권한 후 신분을 회복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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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대첨사 윤흥신장군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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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초량동 고관입구에 설치된 임진왜란 당시 다대첨사 윤흥신... 세워지는 윤흥신 장군의 갑옷을 찰갑으로 표현했다. 1545년(명종즉위)에 발생한 을사사화 때 부형이 사형당하고 어린 윤흥신은 노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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