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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신장군 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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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번주소 : (49493)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1234
도로명주소 : 부산 사하구 윤공단로 112
도로명주소
컨텐츠명 윤흥신공 향사
홈페이지 정보없음
행사일시 매년 음력 4월 14일
행사장소 사하구 윤공단
행사주최 사하구
행사주관 다대1동주민자치위원회
상세문의 051-220-4000
담당자명 사하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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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윤흥신장군 향사

 


 

임진왜란 때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한 다대첨사 윤흥신공과 함께 싸우다 순사한 군민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음력 4월 14일 윤공단에서 향사가 거행되고 있다.


윤공단은 임진왜란 때 순절하신 다대첨사 윤흥신(尹興信) 공과 민·관·군의 넋을 기리고 제향을 봉행하기 위하여 세운 단이다.

 

1765년(영조 41) 다대첨사 이해문(李海文)이 윤흥신공이 순절하신 곳이라고 전해지는 다대진성 내 다대포객사(多大浦客舍)의 동쪽에 설치하였으나, 1970년 다대포객사를 몰운대로 옮길 때 지금 자리로 옮겼으며 현재 부산광역시지정기념물 제9호로 되어 있다.

 

♦ 윤흥신과 윤흥제 형제

 

윤흥신(尹興信)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아버지는 조선 인종 때 외척으로 권세를 누렸던 대윤(大尹) 윤임(尹任)인데, 명종 즉위 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할 때 소윤(小尹) 윤원형(尹元衡) 일파가 일으킨 을사사화 때 숙청당했다. 

 

윤흥신이 1582년 진천현감에서 물러났다가 1592년 다대진첨사에 임명돼 부임할 때, 서제(庶弟) 윤흥제(尹興悌)도 따라왔다.
당시 기록을 종합해 보면 4월 14일 부산진성을 함락한 일본군의 주요 병력은 동래로 향했고, 일본군의 정찰대가 다대포를 접근했으나 조선군에게 격퇴당했다. 다음날 15일 다대진성은 동래성과 함께 많은 수의 일본군 공격을 다시 받아 함락됐는데 이때 윤흥신과 아우 윤흥제는 최후까지 싸우다가 함께 순절했다. 이처럼 다대진성전투의 1차 교전에서는 승리했지만, 2차 본 전투에서는 패배했다.

 

윤흥신의 순절에 대해서는 유성룡의 『징비록』 등 여러 기록에 있지만, 구사맹의 『조망록』이 가장 상세하다. "왜적이 성을 포위하자 역전 끝에 이를 물리쳤다. 그 휘하가 말하기를 `내일에 만약 모든 군사를 동원하여 와서 공격하면 그 세력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나가서 피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라고 하자, 윤흥신은 `다만 죽음이 있을 뿐이다. 어찌 차마 떠나겠는가'라고 하였다. 과연 이튿날 적군이 크게 닥치니 군졸은 모두 도망쳤지만 윤흥신은 홀로 종일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어 죽었다"고 한다.
 

윤흥신과 동생 윤흥제는 1592년 4월 15일 다대진성에서 민·관·군을 독려하며 힘껏 싸우다가 다대포객사 근처에서 전사했다.
 

1765년(영조 41) 다대진첨사 이해문은 윤흥신의 충절을 기려 그가 순절했던 객사 옆, 옛 연못 터(현 부산유아교육진흥원)에 윤공단을 세웠다. 1761년(영조 37) 경상감사 조엄이 윤흥신의 기록을 찾아내고 포상을 요청한 지 4년 뒤였다.
이어 1834년 8월에는 임진왜란 때 다대진성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죽은 의로운 백성들을 위한 순란사민비(殉亂士民碑)가 세워졌으며, 윤흥신의 동생으로 위험에 빠진 형을 끌어안고 함께 순국한 의사윤흥제(義士尹興悌)의 비도 건립됐다. 마지막으로 윤흥신은 1604년 공포된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에 1등 공신으로 이름을 올렸고 관직이 병조참판으로 추증됐다.

 

1834년(순조 34) 동래부 군기감관(軍器監官) 이시눌이 부산진성전투와 다대진성전투를 그린 「임진전란도(壬辰戰亂圖)」의 하단에는 다대진의 치열한 전투 현장뿐만 아니라 비와 단의 내용도 기록하고 있다. 윤공단 아래에는 윤공단의 설치 내력과 제사 일을 적었는데, 다대진성 안에 윤흥신이 전사했던 곳인 연못을 그려 놓았다.
 

철종 연간에는 윤흥신의 시호(諡號)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95년(고종 32)에 다대진이 폐진(廢鎭)되자 소재지의 면장이 제향(祭享)을 맡았다. 1910년(융희 4) 경술국치 후에는 윤공단의 보존과 제향에 일제의 방해가 심해졌다.
 

1970년에는 도시화 과정에서 윤공단이 기존의 다대진영지에서 뒷산 산정으로 옮겨졌으며 1981년 윤흥신 장군의 석상이 동구 초량동에 세워졌다. 또한 2017년 7월에는 창작 오페라 윤흥신이 을숙도문화회관에서 공연됐다.

 


 

윤공단

 

상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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