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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유적,가덕도의 신석기시대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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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번주소 : (46768) 부산광역시 강서구 성북동 1285-2
도로명주소 : 부산 강서구 가덕해안로321번길 11
도로명주소
컨텐츠명 장항 신석기유적지
분류체계 유적건조물/육상유물산포지/선사유물
개별유형 분묘/미지정문화재
확인일자 정보없음
시대구분 신석기시대
상세문의 051-970-4065
관리자명 강서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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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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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가덕도 장항유적

 


 

부산 강서구 성북동 장항마을 신석기 집단 매장유적지에 홍보공원 조성되어 있다.

 

홍보공원은 녹지공간 3600여㎡에 신석기인들의 거주 흔적인 집석유구(集石遺構·돌로 된 구조물 터) 2개를 발굴 당시 그대로 복원해 놓았다.

 

또 집석유구를 중심으로 둘레 30m 정도의 타원형 홍보 안내판 7개를 설치했다. 홍보공원 조성은 발굴 조사가 끝난 후 문화재청의 지시로 시작됐다.

 

유적지에서는 조개팔찌를 한 인골을 비롯해 모두 48기의 인골과 옥제품 6점, 흑요석제 500여점, 토기 등이 다량 출토됐다.

 

(재)한국문물연구원은 “장항유적은 신석기 시대 전기와 중기, 말기로 구분되며 각 시기별로 유구와 유물포함층이 조성돼 있다”면서 “지금까지 확인된 신석기 시대 전기 묘역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보존 및 활용가치가 매우 높은 유적 ”라고 평가했다.

 

특히 전기의 묘역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묘지의 형태는 돌무지 유구와 구덩이 유구 등이 함께 조성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문물연구원은 또 “장항유적의 인골의 장법과 풍부한 부장품은 신석기 시대 당시 매장의례를 추정할 수 있다”면서 “특히 인골에 부장된 완형 토기의 분석을 통해 신석기 시대의 토기변화 양상에 대해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장항유적은 흑요석과 옥기 등의 산지분석을 통해 이웃 일본지역과 교류활동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보고했다.

 

따라서 한국문물연구원은 “장항유적을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최대, 최고의 묘역유적을 문화재로 지정한다면 그동안 막연하게 유물로만 보아왔던 신석기 시대의 주인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역사교육의 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유적의 성격에 맞는 전시관 건립과 함께 유적공원으로 조성한다면 교육과 전시, 관광자원으로 활용가치도 매무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특히 가덕도의 신석기 시대 집단 묘역 패총, 청동기 시대의 지석묘, 삼국시대의 고분군, 조선시대의 가덕진성과 천성진성, 봉수대, 왜성 등과 연계해 ‘역사문화의 섬’으로 발전시키고 관광자원화를 권했다.

 

 

부산에서 유일한 신석기 사람들의 집단 매장터가 발견되어 전국적인 관심이 모아졌던 때도 있었지만, 문화재청의 지시로 공원을 조성하였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거의 방치되어 있었다.

 

현재는 부산신항 확장과 더불어 유적공원이라 하지 못하겠지만 주위에 조그마한 체육코트 및 시설도 설치되어 있고 주위를 새롭게 단장 및 시설물 설치를 해두었다.

 

 

 

 KBS 파노라마 코리안 이브(Eve) 1편 - 가덕도! 7천년의 수수께끼.(2014.09) | 고대사 연구

 

- 가덕도! 7천년의 수수께끼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 한반도 남단. 부산의 가덕도에서 신석기시대의 인골 48개체가 발견되었다. 

7천 년 동안 땅 속에 묻혀 있었던 주인공들은 누구였을까? 

이들에 대한 DNA 검사 결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 한국 사람에게 전혀 없는 DNA를 가진 인골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어디서 온 것일까? 

 

경상남도 남해의 해안가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그 중에서 남해와 낙동강 하구가 만나는 곳에 부산에서 가장 큰 섬 가덕도가 보인다. 

2011년 초, 이곳에서는 부산에 신항만 공사를 위한 기반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공사장에서는 다량의 신석기시대 유물과 인골들이 쏟아져 나왔다. 출토된 유물들은 놀라웠다. 

신석기시대 전기 약 7천 년 전의 고인골 48개체가 발굴됐고, 옥제품을 비롯한 조개껍질 장신구들은 7천 년 전 삶의 방식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었다. 

특히 고인골 48개체의 발굴은 우리나라의 산성토질 특성상 놀라운 일이다. 

보통은 산화돼 형태가 보존되기 어려운데 가덕도 인골들은 달랐다. 

고고학적으로 엄청난 수확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가덕도 신석기시대 장항유적지. 멀리 부산신항이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인골 출토된 게 전부 합쳐서 20기정도 나왔는데, 여기에서만 50기가 나왔거든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한국의 신석기시대 인골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인골이 나왔고, 당시 사람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무슨 생각을 했는가? 하는 것을 정말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유적이 그렇게 나타난 거죠.

 

(정의도 원장, 한국문물연구원)

 


매장방식 : 각각 이미지의 왼쪽은 신전장, 오른쪽은 굴장.

 

 

가덕도 유적에서 또 다른 수확은 토기다. 파편조각이 아니라 완벽한 모양을 갖춘 토기가 발견된 것이다. 

완형 토기들은 토기의 문양과 제작방법에 있어서 신석기시대에 많은 변천이 있어 왔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또 다른 특이점은 인골들의 매장방식이다. 48개체의 인골들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묻혀 있었다. 

하늘을 향해 얼굴을 두고 두 다리를 곧게 뻗은 매장법은 신전장이다. 또 다른 매장법은 굴장이다. 

굴장은 팔 다리를 구부린 채 하반신을 상반신에 붙여 옆으로 묻는 매장방식을 뜻한다. 마치 태아의 자세와 비슷하다. 

신전장은 우리나라에서 흔한 매장방식이지만 굴장은 매우 보기 드문 매장법이다. 

그런데 가덕도에서는 신전장보다 굴장이 더 많이 발견되었다.

 


 

약 7천 년 전 이 가덕도에서 나온 굴장. 그야말로 우리가 보통 말할 때 강하게 굴장되어 있다. 

그래서 강굴이라고 표현합니다만은 마치 사람을 염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렇게 자세가 나오지 않는 사지를 굉장히 구부려서 마치 이렇게 끈 같은 것으로 묶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그런 매장 자세를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때까지 한국에서는 없었던 것이고 그러한 것이 일반적으로 신석기시대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이 확인된 장법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죠.

 

(김재현 교수,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7천 년 전 가덕도의 주인으로 살다가 각기 다른 매장방식으로 묻힌 인골들. 

이들은 우리의 조상일까? 아니면 누구일까? 무더위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여름. 

국립현충원의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에서는 유해들의 분리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전쟁 때 전사한 시신 중에서 미군의 유해를 찾아내는 조사였다. 유해들은 유품을 통해 1차 신원확인을 한다. 

유품이 없을 경우엔 전사자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미국 전쟁 포로 및 실종자 확인사령부에서 일하는 진주현 박사는 미군 유해를 찾아서 미국 내 가족에게 전달하는 작업을 한다. 

그녀가 유해확인 과정에서 가장 유심히 살피는 것은 인골의 얼굴뼈다.

머리뼈 중에서도 얼굴뼈가 인종을 구분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몸집 같은 경우는 인종과 상관없이 그 사람이 운동을 얼마나 했느냐 혹은 무엇을 먹었느냐 이런 것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데 얼굴뼈는 그렇지 않거든요. 

얼굴뼈 같은 경우는 유전자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종구분 하는데 가장 유용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진주현 박사, JPAC, 미국 합동 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

특히 얼굴뼈의 길이나 턱의 발달 정도, 코뼈의 높낮이 같은 것은 인종구분의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렇다면 가덕도에서 발굴된 인골들도 얼굴뼈를 이용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가덕도 장항유적 발굴에 참여했던 동아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팀에서 인골의 얼굴뼈를 살펴보기 위해서 

인골에 붙은 흙을 분리해보았다. 하지만 뼈보다 더 단단해진 흙 때문에 뼈를 제대로 분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얼굴 전문가인 조용진 박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얼굴의 전체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 고성능 3D 스캔을 해봤다. 

그러나 여전히 머리뼈의 온전한 형태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가덕도에서 발굴된 인골의 머리뼈로 그 주인공을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이번엔 컴퓨터 단층촬영을 이용해봤다. 

단층촬영은 X선을 비춰 나타난 조직의 흡수율 차이를 계산해 물체의 단면도를 그리는 것이다.

 

가덕도 33호 인골의 경우, 뼈보다 단단해진 흙 때문에 흡수율 차이를 구할 수 있어서 분석이 가능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붉은 부분이 단층촬영으로 밝혀낸 뼈의 조직이다. 

촬영된 머리뼈는 머리뼈 복원 전문가인 서울대 이원준 박사에 의해 복원이 이루어졌다. 

컴퓨터 단층촬영으로 촬영된 얼굴뼈에서 흙을 제거하고 뼈로 추정되는 영상만 모아봤다. 

그러자 서서히 머리뼈의 형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과연 가덕도 33호 인골은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현대 한국인과는 다른 긴 머리뼈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죠. 특징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인제 그 긴 머리뼈 형태는 한국인이나 동아시아인보다는 서양인에서 보여지는 머리뼈의 형태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원준 박사, 서울대학교 법의학연구소)

굴장으로 매장된 가덕도 33호 인골 외에 두 개체의 인골도 서양인과 유사한 머리뼈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이들의 유전자는 어떨까? 중앙대학교 이광호 교수팀은 인골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 분석을 실시했다. 

고인골에서 유전자를 채취하는 방법은 쉽지 않다. 불순물에 오염되지 않은 뼈가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반도 출토 고인골들은 고대 한반도의 토양이나 기후 등의 영향으로 인하여 몽골이나 중앙아시아의 고인골들과 비교해서 볼 때 DNA 손상 정도가 가장 심해서 DNA 분석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광호 박사, 중앙대학교 생명과학과)

가덕도에서 발굴된 48개체 인골 중에서 분석이 가능한 것은 17개체였다. 

그것들을 1차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일부 인골에서 유럽계 모계 유전자가 검출됐다.

가덕도 고인골들 중 일부는 동양계, 일부는 유럽계의 모계 유전자형을 갖고 있는 것으로 관찰되었습니다. 

추후 나머지 고인골들에 대한 반복적 모계, 부계 DNA 염기서열 분석하고, 다른 연구 그룹에 의한 가덕도 고인골 DNA 분석결과와의 비교분석을 시도함으로써 저의 결과에 신뢰도를 높일 예정입니다.

 

(이광호 박사, 중앙대학교 생명과학과)

가덕도 고인골은 유럽계 모계 유전자 그 중에서도 H형 유전자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골의 정체를 밝힌 모계 유전자는 무엇인가?

1900년 미국 영토가 된 하와이에는 폴리네시아를 비롯해 동양인, 유럽인 등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살지만 그들의 출발은 20만 년 전 한 어머니로부터였다. 

1987년 네베카 칸 교수는 미국 내 거주하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인 산모들이 낳은 아기들의 탯줄을 조사했다. 

그 탯줄에서 모계 유전자인 미토콘드리아 DNA를 검사해 어머니를 통해서만 전해지는 유전병을 확인하려다 놀라운 비밀을 발견했다.

오로지 어머니에게서 아이에게로 유전되는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수백 명의 조상을 살펴보는 대신 단일하고 끊이지 않는 여자 조상의 혈통을 거슬러 올라가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레베카 칸 교수, 하와이주립대학교)

그녀가 발표한 조사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약 70억 명의 현생인류가 아프리카의 한 여성을 공통의 조상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현생인류의 조상으로 추론되는 이 여성은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처음 출현했다고 보았다.

매우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아마 20만 년보다 더 이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 어느 지역 출신이든지 궁극적으로는 까마득히 오래된 매우 특별한 아프리카인 할머니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레베카 칸 교수, 하와이주립대학교)

지구상엔 서로 다른 환경에서 70억 명의 인류가 살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한 여성에게서 시작된 공통의 유전자를 지녔다. 

2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그 여성의 자손들은 약 6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 각지로 퍼져나가서 아시아인과 유럽인이 되었다. 아프리카를 출발한 현생인류가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수많은 돌연변이를 거쳐 지금과 같이 여러 유전 집단으로 분화된 것이다. 

 

그런데 미토콘드리아 DNA는 어떻게 여성을 통해서만 유전되는 것일까? 

서울 노원고등학교 과학반 수업시간. 미토콘드리아 DNA에 대한 설명이 한창이다. 

사람의 유전정보는 두 곳에 보관되어 있다. 

대부분은 세포 내 핵에 있지만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도 조금 존재한다. 

하나의 세포질 안에는 세포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수백여 개의 미토콘드리아가 있다. 

그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와는 독립적인 유전자를 갖는데 그것이 바로 미토콘드리아 DNA이다. 

그런데 그 미토콘드리아 DNA는 오직 모계로만 유전이 된다. 외할머니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딸로 전달되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남자의 미토콘드리아는 정자의 꼬리에 있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하는 순간 정자의 꼬리가 떨어지면서 아버지쪽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사라진다. 

하지만 난자쪽에 있는 어머니쪽 미토콘드리아는 남아있어서 자녀에게 계속 전해진다. 

남녀 모두 각자의 어머니로부터 유전자를 받지만 난자를 갖고 있는 여성만 다음 세대로 미토콘드리아 DNA를 전달하기 때문에 모계 기원을 연구할 때 중요한 정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여성들은 어떤 미토콘드리아 DNA를 갖고 있을까? 

누가 봐도 대한민국 20대 여성인 10명을 한 자리에 모아봤다. 개인에게 동의를 받고 이들의 DNA를 조사해봤다. 

DNA는 입안의 점막이나 침, 혈액, 머리카락 등 세포 어느 곳에서나 얻을 수 있다. 결과는 의외로 다양했다. 

열 명은 여섯 개의 모계 유전자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불과 10명을 갖고 조사했는데도 여섯 개의 다른 형태가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몇 개의 모계 유전자형으로 나뉘어 있을까? 10명의 여성들보다 더 다양할까?

단국대학교의 김욱 교수는 국내 6개 지역이 한국인 708명을 대상으로 미토콘드리아 DNA를 조사 분석했다. 

그 결과 한국인에게서 D4, B4, F, M7 등 다양한 모계 유전자형이 발견됐다.

한국인 집단은 여러 계통의 집단이 시기적으로 다르게 한반도 내로 유입돼서 어느 시기부터는 동질성을 가지고 한반도와 만주 내에서 한국인 집단끼리 주로 결혼하고 집단을 이루고 문화를 공유했기 때문에 적어도 여덟 개 내지 아홉 개의 서로 다른 계통이 우리 한국인을 이룬 계통이 아닌가 저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김욱 교수, 단국대학교 생명과학과)

그러나 김욱 교수의 미토콘드리아 DNA 조사를 포함해 그 어떤 모계 유전자 조사에서도 H형의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은 없었다. 그렇다면 가덕도의 7천 년 전 인골은 누구의 것일까?

 


남해안지역 신석기사람들 기원전 8,000년을 전후하여 시작한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토기의 발생, 석기 제작 방법의 변화,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는 시기이다.

 

빙하기(홍적세洪績世)를 지나 간빙기(충적세沖積世)로 접어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인류는 정주생활을 선택하였고, 새로운 도구를 이용한 기술의 발달은 구덩식집자리(竪穴住居址), 야외화덕(野外爐址), 원시적인 농경, 묘역(墓域) 등을 조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유적은 1920~30년대 후지타(藤田亮策)·요코야마(橫山將三)·아리미쓰(有光敎一) 등에 의해 암사동(1925년), 부산 동삼동패총(1930년), 유판패총 (1932년) 등이 조사되면서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전국 각지 1,000여 곳에 달하는 유적이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로 확인되었으며, 지역적으로는 서북지역·동북지역·중서부지역·중동부지역·남부내륙지역·남해안지역으로 구분된다.

 

남해안 신석기시대 문화는 1930년대 부산 동삼동패총·영선동패총·다대포 패총·암남동패총 등의 조사를 시작으로 1960~1970년대 동삼동패총의 재발굴, 1980년대 이후 수가리패총을 비롯한 연대도·욕지도·상노대도·산등패총 등의 발굴을 통해 재조명될 수 있었다.

 

최근 가덕도 장항유적을 비롯한 창녕 비봉리· 부산 범방패총·하동 목도패총 등의 발굴은 신석기인들의 생활과 죽음의 모습, 교류와 교역, 예술활동의 모습까지 신석기문화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특히 우리나라에 신석기시대 무덤유적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가운데 부산 가덕도 장항유적의 집단묘역 (인골 48개체) 확인은 주목할만한 성과이다. 부산 가덕도 장항유적이 위치한 남해안지역은 태백산맥과 소 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산맥들이 해안에 이르러 지반이 침수된 전형적인 리아스식 해안(rias coast)이다. 크고 작은 만과 반도, 2,300여 개의 섬들이 복잡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주변에는 부산 범방(凡方)패총·영선동(瀛仙洞)패총·동삼동(東三洞)패총·통영 연대도(煙臺島)패총·상노대도(上老大島)패총·여수 안도(安島)패총 등 신석기시대 대표 적 유적들이 분포한다.

 

지금까지의 발굴조사 성과를 토대로 남해안 신석기시대는 토기문화의 변화에 따라 조기에서 만기까지 5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조기는 평저(平底)의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 전기에는 원저(圓底)의 찍은무늬토기(押印文土器), 중기는 첨저(尖底)의 굵은새김무늬토기(太線沈 線文土器), 후기에는 첨저의 봉계리식토기, 퇴화새김무늬토기, 만기 에는 원저의 겹아가리토기(二重口緣土器)로 변화된다.

 

또한 문양구성 에서도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변화하며 만기에는 문양이 대부분 소멸하여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無文土器)로 이어진다.

 

특히 중기 이후부터 갈돌(石棒)과 갈판(碾石), 굴지구, 탄화곡물 등 농경과 관련된 유물이 급격하게 증가되는 것은 원시적인 농경 가능성을 추정하게 한다.

 

최대규모의 남해안 신석기시대 무덤 우리나라의 동·남해안지역의 신석기시대 무덤유적은 고성 문암리, 춘천 교동, 울진 후포리·부산 동삼동·범방패총·통영 욕지도·상노대도 산등·여수 안도 등이 있다.

 

이 무덤들은 독(甕棺), 널(土壙), 동굴, 그리고 돌무지(積石)나 깐돌(敷石) 형태이다. 독무덤(甕棺墓)은 조기(기원전 5,000년경)에 나타나 중기(기원전 2,000년경)까지 이어지고 있고, 돌무지 혹은 깐돌 형태의 무덤은 전기(기원전 3,000년경)부터 만기(기원전 1,500년)까지 존속된다.

 

무덤에서는 귀걸이·팔찌·발찌 등의 인골 착장 장신구와 대형 돌도끼·낚시바늘·돌화살촉·작살 등의 생활용구들이 부장 되었는데, 희귀품의 부장 유무는 피장자의 신분이나 위계의 분화로 이해하기도 한다.

 

아직 신석기시대 장제와 사후관념, 나아가 신석기인의 형질학적 해석은 미진한 편이며, 계속적인 발굴 자료의 축적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이번에 조사된 부산 가덕도 장항유적의 사례는 이러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가덕도 장항유적은 섬의 북서쪽 해안에 위치한다.

 

가덕도는 부산과 거제도 사이에 위치한 부산에서 가장 큰 섬으로 진해만으로 들어가는 해로의 관문이다.

 

조사는 한국문물연구원에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실시하여 신석기시대 전기의 대규모 묘역(인골 48개체)과 구덩(竪穴) 100여 기, 전기에서 후기까지의 돌무지유구(集石 遺構) 90여 기가 발견되었다.

 

전기의 묘역은 우리나라 최대 규모로 돌무지유구, 구덩 유구 등이 함께 조성되어 있다. 묘역에서는 파손되지 않은 100여 개의 토기를 비롯하여 옥제 드리개, 문양이 시문된 골제품, 상어 이빨 등 인골에 착장된 유물들이 확인되어 신석기시대 계층화된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 묘역의 지근거리(至近距離)에 위치한 연대도의 인골 13개체의 묘역과 욕지도·상노대도 유적의 묘역 등으로 보아 이 일대에 대규모 묘역을 조성한 집단의 존재를 짐작할 수 있다.

 

중기~만기에 이르면 유적의 해안선에서 야외화덕로 추정되는 돌무지유구가 열상으로 나열되어 있어 장항유적이 생산을 위한 곳으로 변화한 것을 알 수 있다.

 

가덕도 장항유적은 크게 풍화암반층-사질점토층-혼토패층(모래층) 순으로 퇴적되어 있고, 세부적으로 12개 층으로 구분된다.

 

자세히 살펴보면, Ⅰ~ Ⅷ층은 모래를 기반으로 하는 혼토패층으로 겹아가리(二重口緣), 굵은새김무늬(太線 沈線文), 밀집빗금무늬(短斜集線文), 퇴화새김무늬 등의 유물이 주를 이룬다.

 

이 혼토 패층은 중기 이후 해수면의 상승에 따라 형성된 층이다. 묘역이 확인된 Ⅸ~Ⅹ Ⅱ층은 패각의 혼입이 없는 갈색계 사질점토층으로 덧무늬와 찍은무늬, 지두문(指頭文) 등 전기의 토기가 주를 이룬다.

 

광루미네 센스(luminescence) 분석(OSL) 결과에서도 Ⅸ 층은 B.P. 6400년, Ⅹ층은 B.P. 6700년, ⅩⅠ 층은 B.P. 7200년을 전후한 시기로 신석기시대 전기의 유구와 유물임을 알 수 있다.

 

사질점 토층은 육성층으로 신석기시대 전기에는 현재 보다 해수면이 낮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자료는 남해안의 해수면 변동 및 기후변화 연구 등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신석기인들의 장례모습 가덕도 장항유적에서는 신석기시대 전기에 해당되는 매장 인골 48개체와 다량의 부장용 토기가 출토되었다. 인골은 대체로 Ⅷ층과 Ⅸ층 경계면에 안치되어 있었고, 일부 중첩되어 무덤이 사용되었는데 집단이나 시기적인 차이라기보다 매장시점의 시간적 차이로 여겨진다.

 

또한 인골 주변으로 무덤구덩이(墓壙) 및 봉토(封土) 등의 시설은 확인되지 않지만 훼손없는 인골과 주변에 많은 부장품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묘역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특징은 남해안지역 무덤유적 대부분에서 확인된다. 연대도의 경우는 일부 인골의 무덤구덩이가 남아 있으나 깊이와 규모로 볼 때 인골을 매장하기 위한 시설로 보기는 어렵고 지면을 정리한 정도의 흔적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동물에 의한 인골의 훼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유기물을 이용한 초장(草葬) 등의 매장의례를 추정하게 한다.

 

한편 가덕도 장항유적에서는 인골이 출토되지는 않았으나 보통의 야외화덕와 다른 형태의 돌무지유구가 다수 확인되었다. 인골과 동일시기의 돌무지유구는 중기의 야외화덕과는 다르게 구조와 평면 배치상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형태는 부천 시도패총·범방패총·율리패총 등에서 조사된 바 있으며, 분묘나 의례와 관련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앞으로 더 많은 발굴사례가 축적되면 돌무지유구의 기능도 명확해 질 것이다.

 

가덕도 장항유적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상태가 양호한 인골의 출토일 것이다. 인골은 배치상태로 보아 등고선에 평행한 남북방향으로 안치하였고, 두향은 대체로 북서쪽과 북동쪽이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두향은 유적에 따라 다른데, 안도패총은 북동쪽, 연대도패총은 서쪽방향으로 주로 바다를 향하고 있다.

 

주검을 처리하는 방식에는 기본적으로 펴묻기(伸展葬)와 굽혀묻기(屈葬)가 모두 확인된다. 인골 48개체 중에서 매장자세를 확인할 수 없는 17개체를 제외하면, 굽혀묻기 23개체, 펴묻기 8개체로 굽혀묻기가 74%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 매장방법 이 대부분 눕혀펴묻기(仰臥伸展葬)인데 반해 가덕도 장항유적은 굽혀묻기의 비율이 높은점이 특징적이다.

 

펴묻기된 8개체의 인골은 모두 다리를 곧게 펴고 있으며, 일부 양팔을 가슴 또는 배 위에 올린 경우도 있다.

 

유적 중앙에 위치한 8호 인골의 경우, 좌오른쪽 팔꿈치관절과 무릎관절이 곧게 펴진 상태에서 무릎은 내측으로 모아져 있다.

 

인골 위를 토기로 덮었고, 주변으로 완 3점, 적색안료 2점이 출토되었다. 굽혀묻기된 23개체 인골은 다리를 ‘∧’자상으로 대퇴골과 종아리를 묶어 놓은 것과 다리를 꺾어 하반신 전체를 상반신과 함께 묶어놓은 것 등이 있다.

 

양손은 대체로 가슴 위에 올려놓았으며 두개골은 발치를 바라보고 있다. 15호 인골의 경우 좌오른쪽 팔꿈치관절이 굽어져 골반 위로 내회하고 무릎은 내측으로 모아져 있으며 종아리는 대퇴골 뒤쪽으로 꺾여 있다. 오른쪽 요골은 이탈하여 흉골 위에 위치한다. 또한 매장시 토기를 시상대로 사용하거나 인골 위를 토기나 돌로 덮는 경우가 있다.

 

17호 인골의 경우 토기를 시상대와 덮는데 이용하였고, 27호·38호 인골의 경우 인골 위에 20~30cm의 깬돌(割石)을 덮었다.

 

그리고 2호 인골은 두개골 밑에 돌베게(頭枕石)로 추정되는 깬돌이 놓여 있다. 인골의 형질인류학적 접근 가덕도 장항유적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굽혀묻기는 일본의 양상과 비교해도 팔과 다리를 더 강하게 굽힌 모습으로 가덕도 만의 특징을 나타내며, 이러한 굽혀묻기를 김재현은 '가덕도식 굽혀묻기'라고 명명하였다.

 

가덕도식 굽혀묻기는 팔과 다리의 관절이 모두 심하게 꺾여 있어 죽은 후 즉시 또는 경직이 풀린 후에 강굴(强屈)된 형태를 유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죽은 후 어느 시점에 염과 같은 의례행위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36호 인골의 경우 가덕도식 굽혀묻기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다른 매장사례들과 달리 오른쪽 대퇴골과 경골의 원래 위치가 바꿔져 있다.

 

이것은 주검 매장 이후 다리의 관절을 연결하는 인대가 부식하여 정강이뼈와 분리되어진 흔적이다.

 

성별이 확인된 인골은 전체 18개체에서 남성이 8개체, 여성이 10개체로 남녀 성비가 비슷하다.

 

또한 연령별로도 20대에서 50대까지 골고루 분포하는 편이어서 일반적인 묘지로 판단된다.

 

그리고 대퇴골과 상완골을 이용해 추정한 키는 남성은 평균 157.8±7.33cm이며 여성은 평균 146.8±7.99cm로 추정된다.

 

무덤에서 발견된 옥장식 무덤에서는 토기·석기·흑요석·짐승뼈(獸骨)·조개팔찌(貝釧) 등이 출토되었다. 교역 의 산물로 이해되는 흑요석은 조사지역 전반에 산재해서 200여 점이 출토되었다.

 

대부분 특정한 용도를 알 수 없는 박편이지만, 화살촉을 비롯해 2차 가공이 이루어진 석기도 수점 확인되었다.

 

석기는 돌도끼 4점, 숫돌 1점이, 장신구로는 대형 옥제 드리개(垂飾)(pendant) 1점, 투공된 상어이빨 1점, 조밀하게 홈이 파진 짐승뼈 1점, 조개팔찌 20여점 등이 출토되었다.

 

신석기시대 옥제품은 출토사례가 매우 드문 유물로 울진 후포리, 춘천 교동, 통영 연대도, 부산 범방, 고성 문암리, 부산 동삼동 등지에서 1~2점이 출토되었다.

 

이에 반해 장항유적은 무덤과 구덩이유구에서 옥제품 6점이 출토되었다.

 

인골에 착장되어 확인된 드리개는 부산 장항유적을 비롯해 부산 범방패총, 울진 후포리유적에서 발견되었으며, 그외 고성 문암리유적·울산 처용리유적·제주도 공항유적 등에서 옥제 귀걸이가 출토된 바 있다.

 

인골에서 출토된 옥제 드리개는 대부분 펜던트(pendant)의 형태이나 장항유적에서는 관옥의 형태로 출토되었다.

 

그리고 인골 2호에서도 사슴의 다리뼈를 가공하여 드리개로 사용한 장신구가 출토되었다. 패(牌) 형태를 하고 있으며 표면에는 기하학문의 작은 홈들이 파져 있다.

 

유사한 형태의 장신구가 완도 여서도패총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이러한 장신구는 중국의 선사시대 유적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장신구이나 남해안 지역의 다수 유적에서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동아시아의 전반적인 문화교류 관계의 증거로 추정된다.

 

또한 조개팔찌는 다수의 유적에서 많은 양이 출토되었으나 인골이 착장한 형태로 출토된 유적은 안도패총·산등패총·장항유적 뿐이다.

 

특히 조개팔찌(패륜) 20여개를 연결하여 목걸이를 만든 것은 장항유적이 첫 사례이다.

 

인근의 동삼동 패총, 범방패총에서는 제작과정의 조개팔찌가 다량 출토된 바 있다. 조개팔찌는 신석기시대 보편적인 장신구로 그 용도에 대해 손목 장신구로 보는 경향이 많았으나 이번 조사결과를 통해 볼 때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무덤의 토기는 대부분 파손이 되지 않은 상태로 출토되었다. 소형 토기는 인골의 발치와 허리에 부장되었고, 대형의 호형, 심발형토기는 인골과 1m 가량 떨어 져서 2~3점이 부장되었다.

 

문양은 대부분 조기의 덧무늬이나, 기형은 영선동식토기와 유사한 원저의 기형이다. 이는 조기에서 전기로 이행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중략~

[출처:국립문화재연구원] / [원본바로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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