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83
내 주위정보

실시간 인기검색어

다대진성 트위터로 보내기
5.4km
다대진성, 다대포성지
상세주소
지역선택
카테고리에서 지역검색시 사용되는 주소입니다
지번주소
지번주소 : (49523)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1451
도로명주소 : 부산 사하구 다대로529번길 11
도로명주소
컨텐츠명 다대진성
분류체계 유적건조물/국방/성/성곽
개별유형 성/성곽/미지정 문화재
확인일자 정보없음
시대구분 조선시대
상세문의 051-220-4000
관리자명 사하구청
평점 및 리뷰
0 (0 점) 리뷰 0
미니홈페이지 쪽지보내기

위치정보

다음로드뷰

TODAY : 1   TOTAL : 343

상세정보


 

다대진성

 


 

다대진성의 흔적을 지금은 찾기가 쉽지 않다. 남벽 부분만 일부 남아있을 뿐 북·동·서벽은 길을 내고 아파트를 건축하고 개인집을 지으면서 모두 헐어버린 후 공공건물 울타리의 밑돌로 쓰였거나 개인 주택의 뒷담으로 그 무거운 세월을 견디고 있는 실정이다.

 

다대포를 비롯한 남해안은 예부터 왜구의 노략질이 심했던 곳이다. 그 왜구를 막기 위해 수군의 절도사영을 두었는데 조선 초기의 다대포영은 부산포절제사영 휘하의 만호영(萬戶營)이었다. 그때는 장림포에 있었다. 그 뒤 다대포인 현재의 유아교육진흥원 자리에 옮겨지고 명종 이후 다대포만호영은 부산포와 같은 진(鎭)으로 승격되었다. 임진왜란 이후는 부산포진과 함께 그 중요성에 비추어 딴 진보다 2배의 병선을 가지게 되면서 다대포진의 첨사는 북경의 만포진첨사와 같이 정3품 당상관이 임명되었다.

 

조선초기만 해도 수군은 군량과 군기를 배에 싣고 항상 배위에서 근무하였다. 이것은 해상의 적은 해상에서 수군이 막고, 적이 육지에 오르면 육군이 맡아서 막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수군의 병선이 항상 해상에 있다보니 선체의 훼손과 군사의 고생이 많았다. 거기다가 적에 대한 대항을 해상과 육지로 나누다 보니 수군이 해상의 적을 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성종15년(1484년)수군도 포성에 축성하여 포성 (浦城)을 가지게 하였다. 이에따라 다대포 진영은 성종21년(1490년) 11월에 성의 축조를 마쳤는데, 이는 인근 주민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다대포의 축성은 석성(石城)으로 주위 1,860척, 높이 13척으로 되어있다.

 
다대동 부산유아교육진흥원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 이 지역은 일종의 다대진성 내성이다. 그 담장 동북쪽 모서리 담벼락(진흥원 동관 건물 뒤쪽)이 여느 벽과 다르다. 붉은 벽돌로 매끈하게 쌓은 윗부분과 달리 아랫부분은 아주 오래 됨직한 크고 작은 돌로 투박하지만 튼튼하게 쌓아올렸다. 바로 다대진성 성곽의 흔적이다.

임진전란도의 다대진성 부분을 보면 이곳이 다대진첨사영 성터 흔적이란 것을 쉽게 유추할 수가 있다. 해안 지역이라 퇴적암 종류의 갯돌도 더러 보이고, 사람 키만 한 돌은 기단석 위에 올리는 대석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유아교육진흥원 정문에서 담장(이 담장 역시 내성 역할을 하던 부분으로 시멘트로 덧씌워버렸다)을 따라 가면 중간지점에 ‘다대동로’로 이어지는 골목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가다 왼쪽으로 골목길을 따라 돌아서 가면 골목길 안에 가정집이 한 채 있다. 가정집 옆 담장에도 다대성 성곽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다대진성 체성 중 성돌이 가장 온전히 남아있는 부분으로 이곳에는 지대석을 놓은 위에 20cm 두께의 기단석을 놓고 큰 성돌을 20cm 정도 들여쌓았다. 이마저도 가정집이라 사생활 문제 등으로 인해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 다대진성 전투

'다대성 전투'(1592.4.14)는 임진왜란 초기 다대성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로 다대성은 옛 다대초등학교(현 유아교육진흥원) 일대에 있었던 성을 일컫는다. 그러나 날짜나 전투상황은 자세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당시로 보아서는 서평포나 다대포는 부산포보다 군사적 지체도 낮고 고을도 규모가 작으면서 외떨어져 있었던 것이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왜군은 4월 13일, 서평포(현 구평동 지역)와 다대포로 나눠 공격을 시도했다. 서평포 전투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다대포 전투와 관련, 윤흥신 장군의 저항으로 하루를 막고 다음날 재차 공격한 왜군에 의해 성이 함락돼 장군은 자결했다는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에 의하면 ‘부산진성을 함락시킨 왜적은 군사를 나누어 서평포와 다대포를 함락시켰다. 이때 다대진첨사 윤흥신은 적을 막아 힘써 싸우다가 죽음을 당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4월 14일, 고니시 휘하의 왜군은 부산진성을 함락하고 곧바로 진을 나누어 다대진성과 동래성으로 진격한다.  다대진성은 지금의 다대포 부산유아교육진흥원(옛 다대초등학교 자리)을 중심으로 축성된 다대진첨사영 관할의 해안 성곽을 말한다.  다대진첨사 윤흥신 장군은 서평포진을 함락하고 다대진성 앞에 진을 친 왜군과 이틀에 걸친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 왜군의 공격에 하루를 넘겨 수성한 최초의 전투다.

 


 

상세사진









리뷰평점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
이전
다음
>>
제목 비밀번호
내용
평가점수
점수를 선택하셔야 의견등록이 됩니다. 도배방지키
 77567695
보이는 도배방지키를 입력하세요.
스크랩 0 리뷰 0 조회 387
0 (0점)
비회원스크랩불가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1234
임진왜란때 순절한 다대첨사 윤흥신장군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한 석재단 및 비석
051-220-4082
스크랩 0 리뷰 0 조회 420
0 (0점)
비회원스크랩불가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1234
윤흥신장군 향사
051-220-4000
스크랩 0 리뷰 0 조회 378
0 (0점)
비회원스크랩불가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932-1
다대포항을 한눈에 전망할 수 있는 야생식물원
051-220-4521
스크랩 0 리뷰 0 조회 251
0 (0점)
비회원스크랩불가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1622
서부산 창작거점 공간 -서부산의 새로운 문화공간
051-220-4919
신규
스크랩 0 조회 23
비회원스크랩불가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장재리 34
053-540-4432
스크랩 0 조회 34
비회원스크랩불가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위양리 296
055-359-5641
스크랩 0 조회 115
비회원스크랩불가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구룡리 산 119-3
055-000-0000
스크랩 0 조회 113
비회원스크랩불가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월평리 123-21
055-000-0000
스크랩 0 조회 23
비회원스크랩불가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 905
052-209-3738